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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찌이런일이

작성일 05-02-16 20:08 | 299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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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94년 퓰리쳐 상 수상작입니다. 캐빈카터라는 젊은 작가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의 발표 이후 소녀를 먼저 구해야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원성을 샀던 사진입니다. 보도 사진의 윤리성 문제를 제기했던 문제작이죠. 작가는 젊은 날에 자살을 합니다. 양심의 가책이었을까요? 자세한 설명도 덧붙입니다. 1994년 퓰리쳐 수상작품『수단의 굶주린 소녀』 케빈카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수단 사람들은 세게에서 가장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민족과 종교적인 대립 때문에 벌어진 내전이 오랜기간 동안 계속되엇을 뿐만 아니라, 가뭄과 전염병까지 겹쳐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1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국제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의 원조 프로그램도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거의 제기능을 못하고, 구조식량은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에게는 좀처럼 전달되지 않았다. 이같은 실태를 보도하기 위해 수단 남부에 들어간 카터가 우연히 마주친 것은 아요드의 시량센터로 가는 도중에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옆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셔터를 누른 그는 당장 독수리를 내 쫓았다. 이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세계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일부에서는 촬영보다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찍은 다양한 현실의 공포를 가슴 밑바닥에 담고 있던 그는 1994년 7월 28일 친구와 가족 앞으로 쓴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케빈 카터 1960년 9월 13일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부르그 생. 스포츠 사진을 전문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오래지 않아 프리랜서 카매라멘으로서 남아프리카의 정치 항쟁과 탄압 및 폭력의 최전선에 몸을 던졌다. 그는 이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곧 <선데이 익스프레스>지에 채용된다. 그 후 남아프리카 최대의 일간지 <스타>등 가수의 신문을 거쳐, 1990년에 <데일리 메일>지에서 사진부문을 만들었다. 스상사진을 촬영한 것도 이 신문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댓글목록 9

  나누는 기쁨이 더 큰 사회.....
내가 나누는 작은 손길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 사진을 보신분들..한국 자원봉사센터를 한번 들어가 보심은 어떨지요..?
시작이 어려울뿐..모두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울신랑도 근무중 독거노인 반찬배달을 했었어요.
나한테 물들었다고 하지만  그 소리가 싫지는 않은 이유는 나눔일듯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아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있는 자들은 더 큰손을 만들어 더 많이 움켜쥐려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사진아겠지요.

놀놀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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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쳐상 받은 사진이군요.. 근데 야사모 갤러리2 성격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 아마도 세상사는 이야기에 맞을듯하군요 ^^

한봉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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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맴이 아프기는 저도 동감을 합니다. 우리도 지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와 같은 신세를 면할수가 없을 터인데 결코 남의 일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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