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숲 소식지 <내가 찾는 이 숲>에 제 글이 실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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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풀꽃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24건 조회 2,528회 작성일 04-03-16 19:16본문
- 천년의 불교성지 백계산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 -
3, 4월의 이른 아침,
햇살은 신새벽을 열고 문풍지 안으로 살며시 들어와
여섯 살 난 내 두 눈 위에 내려앉는다.
몽유병에 걸린 아이마냥 부스스 일어나 눈을 떠보면
봄 햇살은 향교 아래 동백나무 숲까지
기다란 길을 깔아 놓았다.
곱고 눈이 부신 그 통로를 따라 그 숲에 이르면,
이슬에 젖은 내 발 앞에 펼쳐져 있는
밤새 앓다 떨어진 선홍빛 꽃봉오리들.
어찌나 싱싱하던지 가만히 앉아 내밀한 곳까지 들여다보노라면
연분홍빛 속치마에 달린 진노랑 구슬들이 까르르 웃으며 얼굴을 가린다.
어린 마음에도 그토록 아름답게 지는 동백꽃의 뒷모습이 못내 아쉽고 마음이 아렸다.

내 몸둥이 만큼은 커다란,
배가 터져도 죽지 않고 늘 퍼렇게 서 있는
할머니동백나무에 난 구멍에 잘 다듬어 숨겨 놓은 지푸라기를 꺼내
꽃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고
다시 그 길을 따라 대문을 들어서면
달그락달그락 아침상을 차리시는 어머니 냄새.
그렇게 한 나절 내 목에 걸린 꽃목걸이는
오후가 되면 사다리 타고 지붕위로 올라가
내, 유년의 4월빛이 다 가도록
초가집을 덮어주던 싱싱한 동백꽃기와가 되어주었다.
그 후로도 내 몽유병은 더해만 가
어느 날은 오동도에서 아침 햇살을 맞고,
어느 날엔 선운사 동백숲에 가 앉아
동박새를 끌어안고 피울음을 함께 울기도 했다.
그렇게그렇게 서른 일곱 해 동안
그 숲길을 걸어 온 내 발걸음은 오늘도,
천년을 살아온 백계산 동백숲에 가 머문다.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계산에는
옥룡사지가 있다. 불교 역사에 있어 매우 소중한 곳이다.
통일신라시대 4대 고승(원효, 의상, 진표, 도선)중 한사람이며
한국 풍수의 원조인 도선국사가 35년 간을 머무르면서
수백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열반에 드신 곳이다.
옥룡사 일대를 백계동이라 부르는데 일명 ‘백학동’이라 하여
길한 땅(吉地)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도선국사는 827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5세에 불교에 입문하여 곡성 태안사에서
당시의 우리나라 선종의 대가인 혜철선사로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뒤이어 전국의 명당자리를 익히며
수행하였다.
37세 되던 해 옥룡사에 들어와 도호를 <옥룡자>라 칭하고 35년간 머무르면서
수 백명의 제자를 길러 ‘옥룡사파’를 만들었으며 72세에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옥룡이라는 지명도 도선의 도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 전해진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신라말 혼란기였으며
도선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건국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미리 예견하여
청년시절 왕건에게 고려 건국에 필요한 덕과 지략을 가르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당시 유행한 묘지 터를 중요시하는 중국식 풍수지리상을 과감히 깨뜨리고,
모든 절터와 집터, 촌락과 도읍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중요하게 여겨
결함이 있는 터에는 나무를 심고 탑을 세워 땅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는 등의
비보풍수, 즉 한국풍수지리사상을 개창하였다.
이렇듯 옥룡사 동백숲 또한 도선국사가
절터의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계산 동백숲은 동백나무가 일반적으로
남쪽 해안이나 섬지역에 밀집하여 자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육지부로 상당히 들어온 곳에 자리한다.
옥룡사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고
총 면적 7ha에 6000여 본의 수백년 된 고목들이 동백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해 마다 2월에서 4월이면 꽃을 피운다.
동백림 남쪽 양지바른 곳엔 역시 도산국사가 심었다는 자연산 녹차나무도 남아 있다.

동백나무와 맺은 인연의 강을 따라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내려오는데
예닐곱 마리의 동박새 가족이 포르르 날아오른다.
해질녘이 아니어서 일까?
선운사에서 듣던 동박새의 피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늘은 미치게 푸르고 봄 햇살 그 위로 행복하게 부서지노니 숲을 사랑하는 이들이시여!
섬진강 줄기 따라 오시다가 다압 매화꽃 향기에 취한 발걸음,
백계산 옥룡사 동백숲에 머물다가지 않으시려는가!
댓글목록
고금분님의 댓글

혼자서 묵상에 잠기며 걸으면 얼마나 좋을가. 음악또한 이렇게 아름다울수가....명 하모니!
풀꽃굄님의 댓글
풀꽃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공은택님, 꽃향유이미경님 감사합니다.
꽃향유이미경님의 댓글

제가 요즘 읽는 책이 차윤정의 우리 숲 산책인데
풀꽃굄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동백숲을 거닐어 다녔습니다
감사 합니다. 제게 행복을 주시네요
공은택님의 댓글
공은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산을 의미있게 풀어주시고,
아름다운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는 풀꽃굄님의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풀꽃굄님의 댓글
풀꽃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박선옥님, 섬잔대님, 팽이님, 가림토님......감사합니다. ^^
가림토님의 댓글

엘레가~ㅇ스하고 빤타스띠~익하구.....
앙드레 복만 버젼으로 해보려했는데....
닭살만 증가시켰군염^^
축하드려염^^
편안하고 감성적인 글입니다.
섬잔대님의 댓글

전라도 쪽으로 갈때면 늘 지나치던 광양이라는 곳은 제철소라는 육중한 이미지에 묻혀
그냥 빨리 지나치고 싶은 곳이기만 했는데 정말 부끄러운 생각을 했었군요. 그 속에 저런 숲을 보듬고 있었다니... 고맙습니다. 꼭 가 보고 싶은 숲...
Sun Ock Park님의 댓글

아름다운 글 잘읽었습니다.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가 행복한 마음 갖게 해주신 풀꽃굄님, 감사합니다.
풀꽃굄님의 댓글
풀꽃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할미꽃님, 초이스님 감사합니다.
고구마깡님이야말로 숲이고 꽃이십니다.
청담님, 감사 !
고운님, 어젠 갑작스런 일도 생기고 6시부터 강의가 있어 못내려갔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성명기님 감사합니다. 언제부터 말을 걸고 싶은 분이신데
왜냐면요? 우리 작은 아가씨 부군이 성명식인데 꼭 그 분과 형제처럼 느껴져서요. ㅎㅎㅎ^^
반갑고 감사합니다. ^^*
성명기님의 댓글

풀꽃굄님의 깔끔한 글이 동백과 너무도 잘 어울리십니다.
문득, 옥룡사에 와 있는 듯. 선운사 뒷 숲에 와있는 듯.
고구마깡님의 댓글

동백꽃기와...
유년의 풀꽃굄님...
님은 숲이고 들이고 바람입니다 ~~
청담님의 댓글

팔방미인!!
고운님님의 댓글
고운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꽃이면 꽃, 숲이면 숲, 나무면 나무, 글이면 글 다재다능 하시고
부지런 하신 풀꽃굄님이 십니다.
할미꽃님의 댓글

풀꽃굉님^^ 글 잘 읽었습니다. 숲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있군요^^
초이스님의 댓글

좋은 일입니다.
곡성에 도림사가 있는데 도선국사와 무관하지 않겠군요.
풀꽃굄님의 댓글
풀꽃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달님, 휘영청 밝은 달이 또록또록한 별들의 눈망울과 화답하는 날엔 더욱 아름다운 곳이지요.
^^한봉석님, 산책 잘하셨습니까? 고맙습니다.
^^참꽃님, 동백나무 터널 속에 환히 웃고 계시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우리 참새미선생님, 이날 샘 댁에 들러 수선화와 섬족도리풀 선물 받고
그것만으로도 오진 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상사호의 일몰이 가져다 준 행운,
다 샘 덕분이었습니다. -.- (꾸벅)
^^한버드님, 숲은 온갖 생명들이 살아가는 집이지요.
그들과 화합하며 살다간 선인들의 웃음이 꽃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그들의 눈물이 골짜기로 흐를 것이며, 그들의 피와 땀과 절개와 고통이 나무도 되고 새가 되어 노래하겠지요.
하여 그들은 어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나 길을 내어주어 붕어가게 하겠지요.
^^길풀님, 옥룡사 오시는 날, 연락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근동은 갈 곳이 참 많지요.
^^들국화님, 반갑습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들국화님의 댓글
들국화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사진도 좋지만 간결한 글 또한 일품입니다. ^.^
길풀님의 댓글
길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시간이 허락하는날에 옥룡사 동백숲을 기억하겠습니다.
한버드님의 댓글

생명의 숲에는 살아있는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는 곳에는 역사가 있네요.
숲으로 난 길을 걸으며 오랜 세월 이 길을 걸어왔을 숱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함께 더듬어 볼 수 있게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참샘님의 댓글

옥룡계곡 많이 찾았던 곳입니다. 제가 그곳 광양에 처음근무했을때..그러니까 85년도 쯤 되겠는데..그 계곡에서 맨몸으로 멱을 감곤 했습니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요 그림과 음악과 글을 읽노라니 그시절의 추억에 잠시 젖어듭니다.
달님의 댓글
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아~
저번 눈사태때 가려했던 백계산 옥룡사 군요..
동백숲길을 거닐고 싶고, 옥룡사랑...백계산 정상을 밟아 보려 했었는데...
축하 드려요....한번쯤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아직도 동백이 피어있겠지요?
한봉석님의 댓글
한봉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님의 글을 읽는 동안에 제가 마치 그 곳에서 산책을 하는기분입니다.
소중한 자료와 좋은 곳을 소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꽃님의 댓글

햇살이 들어오는 동백나무 터널,
나무로 단을 만든 계단도 멋지고,
새소리에 콧노래로 화답하며 ,
천천히 주변의 풀들에도 눈인사 하며 걷고 싶어지네요.
아무 걱정도 없는 평안한 시간이 그곳에 머물러 있는듯...
글을 읽는동안 행복했읍니다.
팽이님의 댓글
팽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읽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글이군요...멋지십니다..^^*